「전 세계 7억 명 장애인의 정책 설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
여러분이 저로 인해
안타까워 하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 덕분에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뤘습니다
1944년 1월 6일
저는 일제 강점기의
혼란 속에 태어났습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소중한 풍경이 있었지요
그날 전까지는요
14세
축구공에 눈을 다쳤습니다
생계를 위해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죠
시력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가장이 된 누이마저
과로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시각 장애인이 되었죠
18세
처음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입학해
열등감을 느꼈지요
안마사가
정해진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노력'이란 능력이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 원서조차 거부되고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출국 결격사유가 되었지만
1972년 국내 최초 장애인 정규 유학
이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 교수 임명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이런 기도를 하더군요
"우리 아빠 눈을 뜨게 해주세요
자전거를 함께 타고 싶어요"
저는 아들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불을 끄고 책을 읽을 수 없지만
아빠는 어둠 속에서 손으로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단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희망'은 잃지 않았습니다
2001년
이민 100년 역사 상
최고 연방정부 고위직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분과위원장 임명(차관보 보직급)
UN 세계 장애인위원회
부의장 역임
"시각 장애인 동양인"
그것은 저의 전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삶을 바라보는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전 세계 7억 명 장애인의
정책 설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는
2011년 췌장암 판정
수술 대신 조용한 마무리를 선택한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메일로나마
작별 인사를 허락 받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은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故 강영우 박사(1944-2012)
그의 마지막 이메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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