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제하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신직(神職)을 지냈다. 신직이란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신 신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사찰로 치면 스님에 해당하는, 일종의 종교인이다.
이산연이 신직을 자원한 동기 가운데 하나는 파격적인 채용 조건이었다....
일제는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꺼리는 신직에 조선인을 채용하기 위해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으로 보인다.
청주신사에서 출사로 근무한 지 2년 만에 이산연은 조선인 최초로 정식 신직으로 승진했고, 이후 해방 때까지 5년 동안 일본신을 모셨다. 매일 평균 1~2회씩 신사 내의 대소 제사를 주관해 집행했으며 틈틈이 일본 가정을 순회하며 집안의 제사를 지내주기도 했다.
이산연은 주위의 조선인들과는 교류를 끊은 채 언어나 의복은 물론 모든 생활양식을 일본식화하고 가족에게도 이를 강요했다. 주위에서 그를 두고 '일본인 이상의 조선인'이라는 말이 자자할 정도로 완전한 '황국신민'으로 지냈던 것이다.
친일파가 된 사람 중에는 일제의 협박이나 고문에 못 이겨 친일로 전들과는 향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산연은 이런 친일파들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그는 친일 가문에서 태어나 일제 통치의 특혜를 마음껏 누렸다.
친일파의 한국현대사,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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