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

한 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의 날'을 만든 김용관. 그는 일제강점기에도 굴하지 않고 과학 발전과 기술의 자립이 곧 조선독립의 길이라며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다.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진정한 과학의 날의 의미를 알아본다.

 

4월 19일, 그날이 되자

경성시내가 갑자기 소란해졌다

 

경성의 거의 모든 차가

몰려 나와

종로에서 안국동으로 달렸다

 

1911년 8월

일본의 <조선교육령> 발표

 

'교육은 충성스럽고 선량한 국민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 1차 조선교육령 제2조 -

 

일본어 교육 주당 10시간

반면, 이과 교육은 주당 2시간

 

조선인 우민화 정책

일명 '바보 교육'

 

이때

"과학발전과 기술의 자립이

곧 조선독립의 길이다!"

 

한 조선인 청년의 외침

 

일본 유학생활 중 목격한

놀라운 과학기술

 

도기 기술자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

김용관의 새로운 꿈

 

조국으로 돌아가

과학기술을 보급하자!

 

민족의 자립적인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발명이 진흥되어야 한다!

 

과학에 관한 글을

닥치는 대로 일간지에 연재하며

고군분투

 

마음 맞는 동기들과 주머닛돈을 털어

1924년 <발명학회> 발족

 

우리 민족 최초의 과학 잡지

1933년 <과학조선> 창간

 

그리고

과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대중 집회 개최

 

1934년 4월 19일

'과학데이"

 

'한 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과학 활동사진 상영회에

몰려든 약 8,000명의 인파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큰 지지를 얻게 된 '과학데이'

 

"한국 최초의 '과학의 날'이었던 그날,

한국인의 문화에 본격적으로

과학이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 임종태 서울대 교수(과학사)

 

1945년 4월 19일

'과학데이' 깃발을 앞세운

54대의 자동차가 경성 시내를 행진

 

소년 군악대가 우렁찬 소리로

과학의 노래를 연주

 

민족 기업과 상인들의 후원으로

더욱 성대하게 펼쳐진 행사

 

과학자들에게 당부하는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강연 등

 

다양한 과학 행사가 지방에도 열리며

전국으로 확산

 

그 해 발명 붐이 일어나

특허가 11건,

실용신안이 67건이나

등록됐다

   - 출처: 대한변리사회

 

그러나

조선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과학 운동이 위험하다!

 

과학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일본

 

1938년

제5회 과학데이가 열리던 날

김용관은 체포된다

 

비록 일제에 의해 중단됐지만

과학대중화운동의 뿌리가 된 '과학데이'

 

1968년

과학기술처 탄생 1주년을 맞아

4월 21일 '과학의 날'로 부활했다

 

 

 

 

 

 

 

지식채널e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덕술  (0) 2024.03.10
우범선  (0) 2024.03.09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나의 생명을 빼앗지 만은...  (0) 2022.02.28
모두의 베토벤  (0) 2022.01.23
마지막 이메일  (0) 2022.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