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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친일파 1호 김인승

1876년 2월 4일, 강화도 초지진 앞바다에 일본 군한 한 척이 출현했다. 이 군함에는 일본 정부의 특명전권변리공사 구로다 키요타카 일행이 타고 있었다. 구로다 일행은 6개월 전에 발생한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교조약을 맺으러 오는 길이었다.

무려 800여 명에 달하는 일행 가운데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 한 명이 끼여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인승, 김인승은 '운요호 사건' 이전부터 일본 측과 내통하면서 일본을 도와왔다. 이제 그 마무리 작업인 강화도조약 체결을 돕기 위해 통역으로 동행한 것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을 도운 조선인이 있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 김인승보다 앞서는 친일파는 없다.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깍지 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