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춘은 일제하 언론인 출신으로 2.8독립선언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초기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독립유공자로서의 공적을 인정할 만하다. 특히 2.8독립선언에 참가한 사실이나 초창기 일제의 통치 정책, 특히 경제 정책을 비판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는 일제 말기에 변절하여 친일 논조의 글을 여럿 썼다.
1931년의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국내 민족진영 인사들의 변절 행진이 시작되자 서춘도 합류했다. 그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공공연히 찬양했다.
"현대전에서 교전국간의 경제전이라는 것은 환언하면 협력전이다. 협력! 이것은 정신의 힘이다. 정부가 국민정신총동원 주간을 설치했으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총후(銃後, 후방) 용사다. 국민총력이 있고서야 총후가 공고하다."
- 「사해공론(四海公論)」 1938년 6월호
1940년대 들어서는... 지원병 제도가 실시되자 지원병 출진을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 반도 청젼 제국, 제군에게는 이제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내선일체, 이것이 제군이 취할 절호의 기회다. .... 1. 대군(大君, 일왕)을 위해 태어나고, 2. 대군을 위해 일하고, 3. 대군을 위해 죽는다는 정신을 갖지 않는 자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우리 일본의 대화혼(大和魂)에서 말한다면 대군을 위해 죽는 일은 신자(臣子)된 자의 본분임과 동시에 죽는 그 사람에게는 더없는 행복이다.
- 「총동원」 1939년 10월호
19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서춘은 '성은에 감읍하며'라는 글을 통해 "쇼와 18년(1943년) 5월 13일!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멸사봉공의 열의에 불타는 반도 1,500만 민중은 이날 또 다시 광대무변한 성은에 감읍하여 마지않을 감격과 광여에 우레 같은 환성을 폭발시켰다."(「춘추」 1943년 6월호)라며 일제의 침략 전쟁 선전에 앞장섰다.
친일파의 한국현대사,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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